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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절사 - 사육신과 생육신의 위패를 모신 곳

by 넥스루비 2007. 8. 7.
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63

단종 복위를 위해 충절을 지킨 사육신을 위시하여 엄홍도와 생육신 중 김시습, 남효온, 그리고 박심문등 10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데 창절사의 연원은 장릉경내에 있었던 육신사(六臣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장릉경내에 있었던 육신사는 1685년 단종의 묘역을 보수하는 일이 있을때 강원도 관찰사 홍만종과 영월군수 조이한이 노산묘 아랫쪽에 단종의 복위를 위해 충절을 지킨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3칸의 사우(祠宇)를 세우게 된다.'육신사'라는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썼으나 전하지 않고 현재의 것은 1791년 영월군수 박기정(朴基正)이 쓴 것이 전해오고 있다.

장릉경내에 있었던 육신사우를 현 위치로 옮겨 세운 것은 1698년(숙종 24) 단종 복위가 본격적으로 거론되면서 부터인데 왕릉곁에 신하들의 사당을 둘 수 있느냐란 것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우의정 이세백(李世白)이 육신사는 정자각과 너무 가까워 불편함이 많음을 상주하자 1705년(숙종31)에 한적하고 넓은 곳을 찾아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1709년(숙종 35)는 영월 유생 엄세영(嚴世英) 등의 소청으로 숙종은 육신사에 '창절사(彰節祠)'라는 사액(賜額)을 내리고 글씨는 문순공(文純公) 권상하(權尙夏)가 썼는데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창절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부연이 있는 맞배지붕으로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중층 건물로서 아랫층은 전면 3칸에 출입문을 설치했으며 윗층은 루다락으로 난간을 두르고 개방되어 있다. 10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2월과 8월에 제향을 올리는데 10충신의 이름을 한 분씩 부르면서 고축(告祝)을 한다.



[승용차]
●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신림IC→영월 방향→88번 지방도→주천→군등치, 신천리, 배일재→연당교에서 좌회전→38번 국도→문곡교→소나기재→삼거리에서 좌회전→장릉→창절사

[대중교통]
● 직행버스
동서울종합터미널(02-446-8000,)에서 오전 6시10분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13회 운행하는 영월행 직행버스를 이용, 소요시간 :약 3시간.

● 시내버스
영월시외버스터미널(033-374-2450)에서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30분까지 수시로 운행하는 장릉행 시내버스를 이용, 소요시간 : 약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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