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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부소산성 - 이중의 성벽을 두른 백제식 산성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4

백제시대의 토석혼축산성(土石混築山城). 둘레 2,200m. 면적 740,602㎡.
표고 106m의 부소산 정상부에 테를 두른 것처럼 쌓은 테뫼식성과 골짜기를 감싸며 쌓은 포곡식(包谷式) 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식 산성이다. 삼국사기 백제분기에는 사비성(泗比城), 소부리성(所夫里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으로 불리어 오고 있다.

538년(성왕 16) 수도 천도를 전후하여 수도 사비를 수호하기 위하여 축조한 것으로 추정하나 먼저 500년(동성왕 22)경 이미 산봉우리에 테뫼형 산성이 축조되었다가 천도할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605년(무왕 6)경에 현재의 규모로 확장, 완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벽 안쪽의 흙을 파서 성내 벽쪽에 호(壕)를 만든 한편 그 파낸 흙을 성내 벽에 보욱(補築)하였으며(土石混築) 성의 바깥 벽면은 기반토를 마치 판축(版築)하듯 황색 사질토와 적색 점질토를 겹겹이 다지고(版築工法) 그 위에 돌을 3~5단으로 쌓고 흙을 덮었다.

성내에는 동,서 남문지가 있우며 북쪽의 금강으로 향하는 낮은 곳에 북문과 수구가 있었으 것으로 보인다. 동문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대형철제 자물쇠 발견되었고, 남문지-문주(問柱)로 사용하였던 초석 2개가 동서로 나란히 있다.
성내에 군창지와 건물지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 군사목적으로 사용하려 한 것으로 보이나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하여 왕과 귀족들이 즐기는 비원으로서의 구실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비천도 이후 백제 멸망시까지 왕도의 중심산성으로서 인근의 청산성(靑山城), 청마산성(靑馬山城) 등의 보조산성으로 왕도의 방어를 강화한 성곽 발달사의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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