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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어머니산성 - 시집가는 신부의 신행길은 이곳을 지나지 않는다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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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어머니산성 - 시집가는 신부의 신행길은 이곳을 지나지 않는다고..

여행정보 넥스루비 2007. 8. 7. 00:09

전북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 산55

가장 오래된 지리지인「세종지리지(世宗地理志)」에 보면 대모산성(大母山城)은 '교룡산성' '금성산성' 등과 함께 기록되어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볼 때 대모산성은 이미 고려 이전의 축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세종지리지(世宗地理志, 권 151)」순창군조에 "대모산성 주위 2백9십보 내유소천 동하불갈 유군창(大母山城 周圍 二白九十步 內有小泉 유군창(有軍倉)"이라 하였고,「동국여지승람(東 國與地勝覽, 권 39)」순창 성곽조에도 "대모산성 재군서사리 석축주칠백십척 고이십육척 재유지천각일 유군창(大母山城 在郡西四里 石築周七百十尺 高二十六尺 內有池泉各一 有軍 倉)"이라 보인다.
이상의 자료는 각각 성의 위치와 그 규모 그리고 군량을 저장한 군창(郡倉)이 설치되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영조 46년(1770년)에 엮어진「문헌비고(文獻備考, 권2)」성곽조에는 "대모산성 재군서사리 석축 주칠백팔십척 고이십육척 내유지천각일원초유노구속기구자 축성거차 다저곡물 잉위관곡 금폐(代母山城 在郡西四里 石築 周七百十尺 內有池泉各一元初有老駒率箕九子 築城居此 儲穀物 仍爲官穀 今廢)"라 보인다.
여기에서는 앞의 자료보다 늙은 할머니가 아홉 아들을 거느리고 성을 쌓았다는 설화가 곁들져 있다. 대모산성은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의  기가지 관곡을 저장한 관창의 구실을 한 것이다. 그리고 성곽은 그 훨씬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모산성은 순창읍 서쪽 약 2㎞지점에 있는데 순창의 남쪽을 흐르는 경천을 남쪽에 두르 있는 표고 150m 내외의 독립된 고지를 테머리식으로 감은 성이다. 그러나 냇줄기의 표고가 100m 내외이므로 비고는 50m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동남으로 면한 수구쪽에 남문 터가 있는데 현재는 그보다 약 40m쯤 북쪽으로 치우친 곳에 길을 내고「대모암(大母庵)」이라는 암자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암자 앞에는 연못이 있고 그 뒤에 우물터가 있는데 이 연못과 우물은 옛 록에 나타난 곳일 것으로 짐작된다. 우물터에서 성벽(城壁)까지는 약 40m쯤 떨어져 있다.
현재 산성(山城)은 거의 붕괴되어 그 흔적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이고 북쪽의 일부만 뚜렷 이 남아 있을 뿐다. 성곽(城郭)의 규모는 동·서 직선거리가 270m이고 남문과 북문 사이인 남·북 폭은 175m이 며 전체 성곽의 둘레는 13m이다. 한편 이 산성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옛날 무척이나 아름답게 생긴 신씨(申氏) 부인이 일찍 과부가 되 홀로 살고 있는데 그 옆집에 살고 있는 총각(설씨 - 薛氏)이 자꾸 결혼하여 함께 살것을 요구하자 마침내 신씨부인은 설씨총각과 내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 다. <일설에는 과부의 성은 양씨(楊氏)였고 총각의 성이 설씨(薛氏 혹은 氏)였다고도 한 다.>
내기의 내용은 신씨부인이 이곳에 돌로 성을 쌓기로 하고 설총각은 나막신을 신고 한양에 다녀 오기로 하되, 만약 총각이 한양에 다녀오기 전에 성을 다 쌓게되면 더 이상 결혼할 것 을 요구하지 않기로 하고, 반대로 성을 다 쌓기 전에 총각이 당도하여 이기게 되면 설총각 의 뜻대로 결혼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로 내기가 시작되었는데 많은 시일이 걸려 부인은 열심히 성을 쌓아 드디어 그 마지막 돌을 올려놓고 돌아서는데 그때 총각도 한양을 다녀와서 막 당도하는 참이었 다. 이때 총각은 부인을 보더니 성은 다 쌓았으나 아직 치마자락에 묻은 흙을 털어내지 않았으니 자기가 이긴 것이라며 당장 결혼을 하자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부인은 끝내 자신의 정절을 지키고자 그만 치마폭을 뒤집어쓰고 저 아래 굽이쳐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죽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에 따라 지금도 시집가는 신부의 신행길은 이곳을 지나는 것을 꺼려 다른 길로 다닌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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