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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선생고택 - 윤증선생고택 (尹拯先生故宅)

by 넥스루비 2016. 11. 16.

이조 숙종대에 윤< 尹 > 증< 拯 > 선생< 先生 >이 지었다고 전하나 그 세부기법으로 미루어 19세기 중엽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노성산성이 있는 이산< 尼山 >의 산자락에 기대어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향하여 놓여 있다. ㄷ자형< 字形 >의 안채가 날개를 펴서 뒤에 배치되었는데 그 앞을 막아 중문간의 출입에 방해가 안되도록 비끼면서 동쪽으로 축을 옮겨 가로로 배치되었다.

사랑채 앞은 행랑채 없이 전면이 개방되며 안채 축의 정면에 정갈한 조선식< 朝鮮式 > 우물이 축조되었고 그 남서쪽에는 역시 조그만 연못이 조성되었다. 안채 동북쪽 모서리에는 사당채가 있는 데 근래에 다시 복원 한 것이며 사당 주위로 담을 둘러서 공간을 따로 구획하고 있다. 안채의 평면구성은 대체적으로 중부방식을 좇으면서도 남도풍이 들어가는 특이한 구성이다.

전체적으로는 좌우대칭으로 가로간은 겹집인 양통 뼈대로, 세로간은 서쪽을 전후퇴, 동쪽을 전퇴로 간살이를 하고 복판에 3간 ×2간의 넓은 대청을 두었다. 서쪽날개는 앞쪽으로 부터 2간부엌, 2간안방, 웃방이 차례로 배치되며 꺾어져서 웃방 옆은 찻방, 그 앞은 넓은 대청과 연결되는 대청공간이 있다.

안방과 부엌 웃간까지의 전퇴 및 안방 뒷퇴는 모두 툇마루가 놓였으며 웃방의 뒷퇴에는 골방이 놓였다. 동쪽날개는 앞으로부터 2간 작은부엌, 2간 안사랑, 마루방, 뒤쪽 모에는 가로 2간을 건넌방으로 꾸몄다. 안사랑 앞퇴는 툇마루이고 건넌방의 앞간은 역시 대청이 되어 안대청과 연결되었으며 마루방을 따로 구획하여 이용한다.

구조는 양통집과 같이 3평주3량인데 대청 중앙만 긴보 5량이다. 도리는 납도리인데 모를 굴렸고 장혀를 받쳤다. 그러나 종도리는 굴도리이며 장혀 받치고 소로를 끼워서 뜬창방을 보냈다. 보의 단면은 굴린 네모꼴이며 대공은 높은 사다리꼴 판대공이다. 기둥은 네모꼴이고 덤벙주초이며 막돌 허튼층쌓기 기단< 基壇 >이다. 사랑채는 높은 2단축대위에 있으며 정면 4간, 측면 2간의 간살이이다. 동쪽에 대청을 두고 복판 2간은 사랑방이며 서쪽간은 앞에 높은 누마루를, 뒤에는 사랑부엌을 배치했다. 사랑 앞퇴에는 툇마루가 놓이는데 사랑대청과 연결되며 대청 전면에는 문 시설이 없이 개방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남도풍의 평면 구성이다. 사랑채의 서쪽과 안채 작은 부엌 사이에는 2간 구들을 두어서 조그만 샛마당을 만드는데 이 건물은 아마도 나중에 만들어 넣은 듯 보인다. 구조는 1고주5량으로서 구조기법 등은 모두 안채와 유사하다. 다만 네모뿔대의 높은 주초를 쓰고 화강암 가공석 바른층 쌓기 댓돌과 축대를 쓴 점만이 다르다. 대문채는 높은 2단축대 위에 자리했다. 맞걸이 5간집이며 가운데 2간에 꺾여 통행되도록 대문간을 만들었다. 지붕은 모임이며 평으로 처리했다. 광채는 안채 서쪽에 세로로 배치되었는데 4간 ×2간의 박공지붕집이다. 구조는 안채와 같은 3평주3량집이다. 사랑채 앞의 축대와 우물, 연못 그리고 몇그루의 나무들은 당시의 조경미를 느끼게 해준다. 또한 뒤안의 축대와 장독대, 대나무숲의 울창함은 우리나라 살림집 공간구조의 아름다움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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