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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영가옥 - 한국형 가옥에 서구풍의 일본색까지 가미한 이색적인 가옥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북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473

이 가옥은 본래 본채를 비롯하여 여러 개가 배치되었던 것으로 추측되나 현존하는 건물로는 몸채로 보이는 안채 1동과 별채 1동, 그리고 퇴락한 모습의 문간채가 변형되어 남아있다.

안채는 상량문(上樑文)에 대정 7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1918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별채는 본 건물의 관리자인 조상철 씨의 모친이 혼인할 때 신방으로 축조된 것이라는 증언을 토대로 하여 보면 그 축조 시기가 안채보다 조금 늦은 1922년 경으로 추측된다.

전체의 건물배치는 알 수 없으며, 보존상태가 극히 불량하여 안채의 난간은 부서지기 직전이고, 건물 모두의 기와는 퇴락되어 일부 건물 내부에 누수되는 곳도 있다. 원대문은 없어지고 좁은 문이 남아 있는데, 이 역시 보존상태가 불량하다. 안채와 별채에 둘러쌓인 지역을 제외하고는 뒷담이 없고, 거의 텃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별채 동편 울밖에는 바로 가까이 김육(金堉, 1580~1658)의 선정비가 서 있다. 울안에 한말 사람의 비로 보이는 2개가 가로 놓여 있는 것을 볼 때, 그 근방에 비석군이 있었던 듯하다.
현재 안채와 별채만 남아 있는데 이것도 사용하지 않아 퇴락해 가는 것을 지방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둘 다 남북으로 길고 서로 평행하나, 안채는 남쪽을, 별채는 서쪽을 정면으로 하고 있다. 좌향(坐向)은 정남향에 가까운 남남서향이다.

조해영 가옥은 연못을 갖춘 정원의 모습이 풍류객들의 발길을 잡아 둘 법했는데, 한창 때는 내로라 하는 명창들이 몇 달씩 신세를 지곤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인연으로 몇 년 전, 이미 가세가 기운 이 집 어른의 칠순 잔치인가에 작고하신 '만정 김소희' 선생이 내려와 공연을 했다고도 한다.

바깥 대청마루에 둘린 亞자형 난간도 이색적이며, 집 구석구석마다 왜색 냄새가 풍기는 구조물도 이색적이다. 한국형 가옥에다 서구풍의 일본색까지 가미하여 재미있게 구성하였으며 부속재들의 표현도 아기자기하여 볼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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