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강산성은 풍기읍 백리마을의 뒷산에 있으며 둘레가 240m 정도인 자그마한 성이다.
그러나 이 작은 성에서 후백제의 최후가 결정됐다. 남쪽 정벌에 나선 고려 태조가 이 곳에서 칠일을 머물면서 후백제로부터 항복서를 받았던 것이다. 성의 이름도 이 때 붙여졌다고 한다.
아쉽게도 지금은 성곽 전체가 허물어져버려 형태조차 파악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러나 이 작은 성에서 후백제의 최후가 결정됐다. 남쪽 정벌에 나선 고려 태조가 이 곳에서 칠일을 머물면서 후백제로부터 항복서를 받았던 것이다. 성의 이름도 이 때 붙여졌다고 한다.
아쉽게도 지금은 성곽 전체가 허물어져버려 형태조차 파악하기 힘들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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