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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제1) -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제1)(初雕本大方廣佛華嚴經周本卷第1)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용인시 기흥읍 신갈리 산19 경기도박물관

당< 唐 >나라 즉천식후< 則天式后 >의 증성원년< 證聖元年 >(695)에 실차난타< 實叉難陀 >가 보제유지< 菩提流支 > 등< 等 >과 더불어 대편공사< 大遍空寺 >에서 새로운 화엄경< 華嚴經 >의 범본< 梵本 >에 의거 신역< 新譯 >에 착수< 着手 >, 5년< 年 >걸려 성역< 聖曆 > 2년< 年 >(699)에 필역선사< 畢譯繕寫 >한 것이다.
동보< 東普 >의 구역< 舊譯 >(보본육십화엄)< (普本六十華嚴) >에서 누락된 것을 증역< 增譯 >, 80권< 卷 >이 되어 「 팔십화엄」< 「 八十華嚴」>이라 일컫는다. 또한 즉천식후< 則天式后 >의 대주< 大周 >때 신역< 新譯 >되어 「 주본화엄」< 「周本華嚴」 > 또는 「신역주경」< 「新譯周經」 >이라 일컫기도 한다. 권두< 卷頭 >는 홍경< 弘景 > 등< 等 >의 표전문< 表箋文 >부터 시작 신역팔십화엄경< 新譯八十華嚴經 >의 총목차< 總目次 >가 칠처구회순< 七處九會順 >으로 39품명< 稟名 >과 80 권차< 卷次 >가 수록되고 이어 천책금륜성신황제< 天冊金輪聖神皇帝 >의 서문< 序文 >과 제1회< 第1會 > 보제장중< 菩提장中 >의 세주묘엄품< 世主妙嚴品 > 제1권< 第1卷 >의 본문< 本文 >이 전개< 展開 >되고 있으며 권말< 卷末 >에는 「성역이년세차을해(699) 십월팔일역필」< 「聖曆二年歲次乙亥(699) 十月八日譯畢 」>에 이어 석범본자< 釋梵本者 > · 역어자< 譯語者 >· 필수자< 筆受者 >· 증의자< 證義者 >의 명단< 名單 > 이 열기< 列記 >되어 있다.
재조대장경< 再雕大藏經 >에 수록된 주본화엄경< 周本華嚴經 >과 비교하여 보면, 1) 본문< 本文 >에서 초조판< 初雕板 >은 권두< 卷頭 >에 표전문< 表箋文 >· 총목차< 總目次 >· 황제서문< 皇帝序文 >만 있다. 2) 본문< 本文 >의 벽?결획< 벽?缺劃 >에서 초조판< 初雕板 >은 경< 敬 >(송태조의 조명)< (宋太祖의 祖名) >이 3회< 回 > 나오는 것 중 1회< 回 >는 결획< 缺劃 >되어 있으나, 재조판< 再雕板 >은 그것이 모두 바로 잡혀지고 있다. 3) 권말< 卷末 >의 음의< 音義 >가 초조판< 初雕板 >에 없으나, 재조판< 再雕板 >에는 수록되어 있다. 4) 판식< 版式 >에서 초조판< 初雕板 >은 매장 23행 14자< 每장 23行 14字 >이어서 글자가 작고 가늘어져 빽빽하다. 삼본화엄경< 三本華嚴經 >만은 국내전본< 國內傳本 >에 의했기 때문이다. 5) 판제< 板題 > 권장함차< 卷張函次 >가 초조판< 初雕板 >은 도려내고 점련< 粘連 >하여 나타나지 않았으나 다른 경< 經 >을 보면 대체로 본문< 本文 > 앞의 여백< 餘白 >에 새겨지고 그 중 장차< 張次 >에는 「 장」< 「丈」 >의 글자가 쓰여지고 있다. 재조판< 再雕板 >도 본문< 本文 >앞 여백< 餘白 >에 표시되어 있으나, 그 형식< 形式 >은 「주경 제일 제이폭수 유」< 「 周經 第一 第二幅 垂 遺」 >와 같이 되어있고 「장」< 「丈」>대신 폭< 幅 >의 글자가 쓰여지고 있다. 6) 간기< 刊記 >가 초조판< 初雕板 >에는 생략< 省略 >되고 있으나, 재조판< 再雕板 >에는 권미제< 卷尾題 > 다음에 「 을사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 「 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 」 >와 같이 표시된 차이점< 差異點 >이 있다.
초조대장경< 初雕大藏經 >의 주본화엄경< 周本華嚴經 >은 총 80권 중 11권이 국내< 國內 >에서 발견되었으나, 제 1권은 이것이 유일본< 唯一本 >으로서 각자< 刻字 >가 정교< 精巧 >하고, 글자의 묵색< 墨色 >이 시커멓게 윤< 潤 >이 나며, 지질< 紙質 >이 자못 고박< 古樸 >한 11세기< 世紀 > 인출< 印出 >의 정각본< 精刻本 >인 바, 초조판< 初雕板 >의 원형< 原形 >을 살필 수 있는 귀중< 貴重 >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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