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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약령시제전 - 전국 각지의 한약상들이 채집한 약재들을 모아놓고 매매를 하던 시장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북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약령은 문헌에 의하면 조선조 17대 왕인 효종대왕 2년(1651년) 처음으로 시작하여 일제말엽 즉 1943년까지 약 300년간 한약재 교역을 위해 마련된 특수시장이다.

기록상 약령시가 설치된 것은 지리적으로 약초의 채취와 집산의 중심지였다. 전주가 한때는 유명한 약령시로서의 역할을 했었다는 증거는 전주시 다가동 현 연수당한의원 앞 노변에 전주약령시총무진의관 박계조기념비가 입증하고 있다. 제주도와 지리산을 중심으로 채집되는 고귀한 약재들의 집산지로 전주 약령시는 대구약령시에 버금가는 큰 규모의 한약재 시장이었다. 1932년 11월경부터 시작된 전주 약령시의 개설장소는 현재 약령비가 있는 곳에서 청석동 우체국 앞을 지나 매곡교에 이르는 구간에 형성되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한약상들이 채집 약재들을 모아놓고 매매를 했던 것이다.

당시 약령시로는 대전, 청주, 공주, 원주, 대구 등 전국적으로 상설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풍성했던 곳이 바로 전주약령시였다는 보고도 있다. 이유는 제주도를 비롯 전남북 지방과 지리산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 희귀 약재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년 중 음력 10월 1일에서 12월말까지 삼동간만 개설했으며 해마다 개최되었다. 이러한 약령시가 개설되기 전에는 인삼을 구하려면 금산을 찾아야 되고, 반하를 구하려면 제주도로 가야하고, 오미자는 백두산 부근에서, 약애는 강화도 지역에서, 지황은 정읍에서 구할 수 밖에 없어서 1년중 반년은 약을 구입하러 다니고, 반년은 약을 팔아야 했으며, 응급환자에게 급히 쓸 수 있는 약이 없어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의도적으로 약령시를 형성시켰다는 것이다.

전주약령시는 당시 유지였던 박기순의 후원과 약령시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던 박계조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기반을 닦았던 것이다. 약령시가 벌어지면 약령시장에는 백색에 적색글씨로 산지, 종류, 약종회사명을 표시한 영기가 나부꼈으며, 전국 에서 몰려든 약종상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잊혀져가는 전주약령시의 전통을 되새김 특색있고 다채로운 행사로 예향전주의 이미지 제고, 시민에게 한방시혜 제공과 한의약 및 관련산업의 활성화 도모를 위해 이 행사를 개최한다.

- 추진배경-

1) 잊혀져가는 전주약령시의 전통을 되새김
2) 특색있고 다채로운 행사로 예향전주의 이미지 제고
3) 시민에게 한방시혜 제공과 한의약 및 관련산업의 활성화 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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