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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산성 - 한국 특유의 산성 양식으로 유서 깊고 중요한 곳

by 넥스루비 2007. 8. 7.
강원 인제군 북면 한계리 산1-1

한계산성< 寒溪山城 >은 신라말< 新羅末 > 경순왕< 敬順王 >(927∼935, 재위)의 전설이 전해오는 유서 깊은 산성이다. 언제 처음으로 축성< 築城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천연적인 험준함에 의지하여 골짜기를 에워쌓은 포곡식< 包谷式 >의 산성이다.
성벽< 城壁 >은 거의 무너졌으나 옥녀탕< 玉女湯 > 골짜기의 문터< 門址 >와 그 연장부는 견고한 내외겹축< 內外夾築 >의 물매 있는 성벽을 보여주고 있다.
쐐기돌을 이용하여 자연할석< 自然割石 >을 조금씩 다듬어 쌓은 점이나 성벽의 구조< 構造 >에서 현존부분이 고려< 高麗 > 말기< 末期 >의 산성축조< 山城築造 > 양식< 樣式 >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의 역사기록에 의하면 고종< 高宗 > 46년(1259)에 함경도지방< 咸鏡道地方 >의 일부 세력이 고려를 배반하고 몽고사람을 끌어들여 이곳을 공격했으나, 산성방호별감< 山城防護別監 > 안홍민< 安弘敏 >이 야별초< 夜別抄 >를 거느리고 출격하여 모두 목 베었다고 하였다.
이 전투 이후로 북방 오랑캐와 왜구< 倭寇 >에 대비하여 인근의 주민들을 농성입보< 籠城入堡 >케 하기 위해 수축< 修築 >이 계속되었음을 성내의 비석명문< 碑石銘文 >이 밝혀 주고 있다. 조선시대< 朝鮮時代 >의 기록에는 둘레가 6,278척< 尺 >, 높이 4척이고 성 안에 우물이 있다고 하였다. 설악< 雪嶽 >의 험한 산지에 축조한 한국 특유의 산성 양식으로 유서 깊고 중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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