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당은 조선 명종(明宗) 때 육현신(六賢臣)의 한 사람으로 광주목사(光州牧使)를 지낸 갈천(葛川) 임훈(林薰)이 후학 양성을 위하여 그의 아우 임운(林芸)과 1573년에 건립하였다. 그 후 1878년에 후손들이 중건(重建)한 목조와가(木造瓦家)건물이다.
건물 구성은 강당과 대문으로 되어 있는데,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홑처마이고 양측 면에 풍판(風板)을 달았다. 처마밑에는 그 당시 사용하던 큰북의 외통이 걸려 있다. 대문는 맞배지붕 솟을 대문이며 뜰에는 후손들이 세운 두형제의 신도비(神道碑)사 나란히 세워져 있다.
건물 구성은 강당과 대문으로 되어 있는데,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홑처마이고 양측 면에 풍판(風板)을 달았다. 처마밑에는 그 당시 사용하던 큰북의 외통이 걸려 있다. 대문는 맞배지붕 솟을 대문이며 뜰에는 후손들이 세운 두형제의 신도비(神道碑)사 나란히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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