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숭겸장군유적 - 장절공( 壯節公 ) 신숭겸 장군이 순절( 殉節 )한 곳

by 넥스루비 2007. 8. 7.
대구 동구 지묘동 526

이 곳은 고려< 高麗 > 태사< 太師 > 개국공신< 開國功臣 > 장절공< 壯節公 > 신숭겸 장군이 순절< 殉節 >한 곳이다. 신숭겸 장군은 태봉< 泰封 >의 기장< 騎將 >으로 있으면서 배현경< 裵玄慶 > 등과 포악< 暴惡 >한 궁예< 弓裔 >를 내몰고 왕건< 王建 >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였다. 장군은 그 뒤에 대장군< 大將軍 >이 되어 태조< 太祖 > 10년(927) 태조와 신라< 新羅 >를 도와 후백제< 後百濟 >를 공격할 때 대구< 大邱 > 공산< 公山 > 싸움에서 후백제군에 포위< 包圍 >되어 태조가 위기< 危機 >에 빠지자 태조를 숨기고 자신의 태조를 가장< 假裝 >하여 대신< 代身 > 전사< 戰死 >하였다. 태조는 장군의 죽음을 애통< 哀痛 >히 여겨 그의 시신< 屍身 >을 거두어 광해주< 光海州 >(지금의 춘천< 春川 >)에 예장< 禮葬 >하고 그곳에 순절단< 殉節壇 >과 지묘사< 智妙寺 >, 미리사< 美理寺 >를 세워 그의 영정< 影幀 >을 모시고 명복< 冥福 >을 빌게하고 일품전지< 一品田地 > 삼백무< 三百畝 >를 하사< 下賜 >하여 이를 수호< 守護 >하게 하였다. 조선< 朝鮮 > 선조< 宣祖 > 40년(1607)에 경상도관찰사< 慶尙道觀察使 > 유영순< 柳永詢 >이 폐사< 廢寺 >된 지묘사< 智妙寺 > 자리에 표충사< 表忠祠 >를 지어 공< 公 >을 모시도록 하였으며 그후 조정< 朝廷 >에서는 현종< 顯宗 > 13년(1672)에 이 서원< 書院 >에 사액< 賜額 >을 내리어 관리토록 하였다. 고종< 高宗 > 8년(1871)에 서원철폐령< 書院撤廢令 >으로 표충사가 훼철< 毁撤 >된 뒤부터는 후손들이 재사< 齋舍 >를 신축< 新築 >하여 지켜오고 있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