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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사 - 화엄십찰 가운데 하나... 전주 일원을 관장하던 사찰

by 넥스루비 2007. 8. 7.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이 절은 676년(신라 문무왕16)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국신사(國信寺)라 하였다.
그 이후 귀신사(歸信寺)로, 귀신사(鬼信寺)와 구순사(拘脣寺)였다가 귀신사(歸信寺)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된 동기와 그 변경연대 등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최치원은 이곳에서 「법장화상전(法藏化尙傳)」을 편찬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국사 원명(圓明, 1262-1330)이 중창하였다.
임진왜란의 병화로 폐허가 된 것을 1873년(고종 10)에 춘봉(春峯)이 중창한 뒤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정복지를 교화하여 회유하기 위해 각 지방의 중심지에 세웠던 화엄십찰 가운데 하나로서 전주 일원을 관장하던 사찰이었다.
한때 금산사가 이 절의 말사였을 정도로 사세가 컸다.
고려말에는 이 지방에 쳐들어 온 왜병 300여 기(騎)가 이 곳에 주둔하였는데 병마사 유실이 격퇴시켰을만큼 규모가 커서 주변 일대 사찰에 딸린 건물과 암자가 즐비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마을 곳곳에서 석재와 초석 등이 발견된다.

마을 주민들은 절 주위에 논밭을 갈거나 집을 지으려고 땅을 파다 보면 토관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토관은 절 오른쪽 계곡에서부터 물을 끌어와 절안의 이곳 저곳에 식수를 보내던 상수도관으로 이 토관들이 뻗어있는 방향과 범위들을 추적해 보면 옛날 절의 규모와 건물위치 등을 밝혀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대적광전 건물이 절 가운데 우뚝 서있고 그 서쪽 곁으로 노전(爐殿) 한 채가 있다.
그 아래 맞은편에 명부전 건물이 있을 뿐 요사채도 변변히 없어 절 입구 오른쪽에 근래에 임시로 지어둔 간이 조립식 집이 있을 뿐이다.


[승용차]
●전주 -> 금산사 (712번 지방도로) -> 원청도 마을
●호남고속도로 금산사 IC (2.5km) -> 원평지서 삼거리(좌회전) -> 금산사 방면 712번 지방도로 (4.2 km)



[대중교통]
●전주에서 금산사행 버스 이용, 귀신사에서 하차/30분 간격
●김제-청도리행 완행버스 이용/1일 6회(약1시간30분 간격)운행/1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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