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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 추존왕과 왕비의 릉(章陵)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김포시 풍무동 산141-1

추존왕(追尊王) 원종대왕(元宗大王)과 추존왕비(追尊王妃) 인헌왕후 구씨(仁獻王后 具氏)의 릉(陵)이다. 원종대왕은 선조(宣祖)의 제5자(第5子)로서 선조 13년(1580년) 6월 22일 경복궁 별전에서 탄생하였으며 휘(諱)는 부이고 사친(私親)은 저경궁 인빈 김씨(儲慶宮 仁嬪 金氏)이다. 선조 20년 (1587년) 정원군(定遠君)으로 봉(封)하여졌고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로 몽진시(蒙塵時) 호종(護從)한 공(功)으로 선조 37년(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에 봉(封)하여졌다. 선조 승하로 이복형 광해군이 즉위한 후 동모형 임해군 등을 유배·사사시키는 등 왕위를 둘러싼 정쟁 속에서 피화되어 궁박히 지내다가 광해군 11년(1619년) 12월 29일 호현방 만사(好賢坊 寓舍)에서 훙서하니 춘추 40세였다. 이듬해 광해 12년 (1620년) 2월에 양주 곡촌리에 장례하였으며 정원군의 장자 능양군이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르자 인조 즉위년(1622년)에 대원군으로 봉하여졌고 추숭하여 원호를 흥경원으로 하였으며 인조 5년(1627년) 8월 27일 양주 곡촌리에서 김포의 성산 자좌오향(정북에서 정남향) 언덕에 천장하였다. 인조 10년 (1632년) 3월 11일 흥경원을 장릉으로 추봉하였고 같은 해 5월 19일 묘호를 원종으로 추숭하였다. 원종대왕의 비 인헌왕후 구씨는 본관이 능성으로 영의정에 증직된 능안부원군 구사맹의 딸로서 선조 11년(1578년) 4월 17일 탄생하였으며 선조 23년(1590년) 정원군과 가례를 올리고 연주군부인에 봉(封)하여졌다. 인조 즉위년(1622년) 연주부부인으로 진봉(進封)되었고 궁호(宮號)를 계운궁(啓運宮)이라 하였다. 인조 4년(1626년) 1월 14일 경희궁 회상전에서 훙서(薨逝)하니 나이 49세였으며, 소생은 인조대왕 등 4남(男)이다. 이 해 5월 18일에 김포현 성산의 계좌정향(북북동에서 남남서향)에서 언덕에 예장하고 원호를 육경원(育慶園)이라 하였다. 인조 5년(1627년) 8월 원종의 흥경원을 김포 성산으로 천릉할 때 그 동편 자좌오향(정북<正北>에서 정남향) 언덕에 천장하면서 흥경원이라 합칭하였으며 대왕릉과 동원이봉으로 쌍릉이다. 인조 10년 (1632년) 5월 19일 원종의 묘호를 정할 때 익호를 인헌이라 하였다. 장릉은 병풍석을 양릉 모두 세우지 아니하고 릉침 아래로 얕은 호석을 둘렀으며 난간석 또한 설치하지 아니하였다. 각 릉 앞에 상석 1좌씩 모두 2좌가 있으며 그 동서 양측에 망주석 1쌍과 양릉의 밖으로 양석과 호석 각 2쌍을 교호 배치하였으며, 그 밖으로 삼면의 곡장이 있다. 병석과 난간석을 설치하지 아니한 것은 추봉한 다른 왕릉의 전례에 따른 것이며 석물만을 왕릉으로 개비(改備)하였기 때문이다. 중계(中階)엔 문인석 1쌍과 마석 1쌍을 상면 설치하고 중앙에 팔각형 명등석 1좌(座)가 있다. 하계(下階)엔 무인석과 마석 각 1쌍이 문인석과 같이 설치되었다. 릉원 아래에 정자각이 있으며 정자각 동측에 비각이 있다. 비면은 조선국원종대왕장릉 인헌왕후부좌라 쓰고 음기가 있으며 영조 29년(1753년)에 세운 것이다. 비각 아래에 수복방이 있으며 정자각 남측 참도가 시작되는 곳에 홍전문이 있다. 홍전문으로부터 남측 아래로 내려오면 재실>이 있고 재실 서남측에 연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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