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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 인조대왕과 동비 인열왕후 한씨의 릉(長陵)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산25-1

제16대<第16代> 인조대왕<仁祖大王>과 동비<同妃> 인열왕후<仁烈王后> 한씨<韓氏>의 릉<陵>이다. 인조대왕<仁祖大王>은 추존<追尊>된 원종대왕<元宗大王>의 제1자<第1子>로서 선조<宣祖> 28년(1595년) 11월 7일 황해도<黃海道> 해주부사<海州府舍>에서 탄생<誕生>하였으며 휘<諱>는 종<倧>이고 자<字>는 화백<和伯>이며 호<號>는 송창<松窓>이고, 모후<母后>는 추존<追尊>된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具氏>이다. 인조<仁祖> 27년(1649년) 파주<破州> 북<北> 운천리<雲川里> 인조<仁祖> 원비<元妃> 인열왕후<仁烈王后> 한씨<韓氏>의 릉<陵> 좌측<左側> 묘좌유향<卯坐酉向>(정동<正東>에서 정서향<正西向>) 언덕에 예장<禮葬>하였으니 인조<仁祖>가 재위시<在位時> 능지<陵地>로 택정<擇定>하였던 곳이다. 숙묘대<肅廟代>에 천릉론<遷陵論>이 있었으나 수용<受容>되지 아니하였고, 영조<英祖> 7년(1731년) 좌의정<左議政> 이□<李□> 등이 능상<陵上>에 사갈<蛇蝎>이 무리를 이루고 있어 천봉<遷奉>을 아뢰니 이 해 8월 30일 교하현<交河縣> 객사<客舍> 뒤 자좌우향<子坐右向>(정북<正北>에서 정남향<正南向>)언덕에 인열왕후<仁烈王后> 한씨<韓氏>와 천릉<遷陵> 합장<合葬>하였다. 인조대왕<仁祖大王> 원비<元妃> 인열왕후<人烈王后> 한씨<韓氏>는 본관<本貫>이 청주<淸州>로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서평부원군<西平府院君> 한준겸<韓浚謙>의 여<女>로서 선조<宣祖> 27년(1594년) 7월 1일 강원도<江原道> 원주<原州>에서 탄생<誕生>하였고 모친<母親>은 회산부부인<檜山府夫人> 황씨<黃氏>이다. 광해군<光海君> 2년(1610년)에 능양군<綾陽君>과 가례<嘉禮>를 올리고 청성현부인<淸城顯夫人>에 봉<封>하여졌으며 인조<仁祖> 즉위년<卽位年>(1623년) 3월 14일 왕비<王妃>로 책봉<冊封>되었다. 인조<仁祖> 13년(1635년) 12월 9일 용성대군<龍城大君> 생산<生産> 후 산후병<産後病>으로 창경궁<昌慶宮> 여휘당<麗暉堂>에서 승하<昇遐>하니 춘추<春秋> 42세였으며 소생<所生>은 소현<昭顯>, 효종<孝宗>, 인평<麟坪>, 용성<龍城>의 4남<男>이다. 이 해 12월 17일 익호<謚號>를 인열<仁烈>이라 하고 능호<陵號>를 장릉<長陵>으로 하였으며, 이듬해인 인조<仁祖> 14년(1636년) 4월 11일 파주<坡州> 북<北> 운천리<雲川里> 묘좌유향<卯坐酉向>(정동<正東>에서 정서향<正西向>)에 예장<禮葬>하였으나 영조<英祖> 7년(1731년) 8월 30일 장릉<長陵>을 천릉<遷陵>키로 함에 따라 천봉<遷奉>하였다. 장릉<長陵>은 동원합봉릉<同原合封陵>이다. 능침<陵寢>엔 12면의 병풍석<屛風石>을 세웠으며, 병석면<屛石面>엔 목단문<牧丹紋>과 연화문<蓮花紋>을 부조<浮彫>하였으며, 종래<從來>의 면석<面石>에 운문<雲紋>과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새긴 전통적<傳統的> 양식<樣式>과 다르다. 그 밖으로 12칸의 난간석<欄干石>을 둘렀으며, 양석<羊石>과 호석<虎石> 각 2쌍이 외향<外向> 배치<配置>되고 능전<陵前>에 상석<床石> 2좌<座>가 있으며, 그 양측<兩側>에 망주석<望柱石> 1쌍이 있고 그 밖으로 3면의 곡장<曲墻>이 있어 상계<上階>를 이루고 있다. 중계<中階>에는 문인석<文人石> 1쌍, 마석<馬石> 1쌍이 상면<相面> 설치<設置>되었고, 중앙<中央>엔 팔각형<八角形> 명등석<明燈石> 1좌가 있으며, 명등석<明燈石> 문양<紋樣>도 목단문<牧丹紋>과 연화문<蓮花紋>이 조각<彫刻>되어 있는 바 운천리<雲川里> 구릉<舊陵>에서 신릉<新陵>으로 천릉시<遷陵時> 구릉<舊陵>의 양릉<兩陵> 병석<屛石>이나 난간석<欄干石> 상석<床石>은 서로 척수<尺數>가 맞지 아니하여 신릉<新陵>으로 이설<移設>치 못함으로써 천릉시<遷陵時> 신설<新設>하면서 운문<雲紋>과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화문<花紋>으로 바뀐 것이니 인조년대<仁祖年代>와 영조년대<英祖年代>의 석물<石物>이 함께 있으며, 병석<屛石>은 이 후대<後代>에 세우지 아니하다가 국말<國末> 황제릉<皇帝陵>인 고종<高宗>과 순종<純宗>의 홍<洪>·유릉<裕陵>에서 다시 세우게 된다. 하계<下階>에는 무인석<武人石>과 마석<馬石> 각 1쌍이 상면 배치<上面 配置>되었다. 능원<陵原> 아래에 정자각<丁字閣>이 있으며 비각<碑閣>은 정자각<丁字閣> 동측<東側>에 있고 비면<碑面>은 전서<篆書>로 조선국인조대왕장릉<朝鮮國仁祖大王長陵> 인열왕후<人烈王后> 부재<부在>라 썼으며 음기<陰記>가 있다. 비각<碑閣> 아래 수복방<守僕房>이 있으며 홍전문<紅箭門>은 정자각<丁字閣> 남측<南側> 참도<參道>가 시작되는 곳에 있고 재실<齋室>은 홍전문<紅箭門> 동남측<東南側> 소로변<小路邊>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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