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광산구 동호동 32-2
이곳은 조선< 朝鮮 > 중기< 中期 >의 문신< 文臣 >인 송천< 松川 > 양응정< 梁應鼎 >의 묘소< 墓所 >이다. 선생은 중종< 中宗 > 35년(1540) 생원시< 生員試 >에 장원급제< 壯元及第 >하였고 이어 명종< 明宗 > 7년(1552) 식년문과< 式年文科 >에 급제하여 공조좌랑< 工曹佐朗 >이 되었으며, 명종 11년(1556) 문과중시< 文科重試 >에 장원하고 공조정랑< 工曹正朗 >, 진주목사< 晋州牧使 >, 경주부윤< 慶州府尹 > 등을 거쳐 대사성< 大司成 >을 지냈었다. 묘역< 墓域 >에는 선조< 宣祖 > 14년(1581) 유림< 儒林 >들이 세운 묘비< 墓碑 >와 석물< 石物 >이 있는데 정교하고 고풍이 역연하다. 또 이곳에는 선생의 아들이며 진주성< 晋州城 > 전투에서 순절한 충민공< 忠愍公 > 양산숙< 梁山璹 >의 묘와 선생의 손자인 한림학사< 翰林學士 > 양만용< 梁曼容 >의 묘가 있다.
이곳은 조선< 朝鮮 > 중기< 中期 >의 문신< 文臣 >인 송천< 松川 > 양응정< 梁應鼎 >의 묘소< 墓所 >이다. 선생은 중종< 中宗 > 35년(1540) 생원시< 生員試 >에 장원급제< 壯元及第 >하였고 이어 명종< 明宗 > 7년(1552) 식년문과< 式年文科 >에 급제하여 공조좌랑< 工曹佐朗 >이 되었으며, 명종 11년(1556) 문과중시< 文科重試 >에 장원하고 공조정랑< 工曹正朗 >, 진주목사< 晋州牧使 >, 경주부윤< 慶州府尹 > 등을 거쳐 대사성< 大司成 >을 지냈었다. 묘역< 墓域 >에는 선조< 宣祖 > 14년(1581) 유림< 儒林 >들이 세운 묘비< 墓碑 >와 석물< 石物 >이 있는데 정교하고 고풍이 역연하다. 또 이곳에는 선생의 아들이며 진주성< 晋州城 > 전투에서 순절한 충민공< 忠愍公 > 양산숙< 梁山璹 >의 묘와 선생의 손자인 한림학사< 翰林學士 > 양만용< 梁曼容 >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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