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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정사 - 후석 오준선이 나라가 병탄되자 후학을 가르치던 곳

by 넥스루비 2007. 8. 7.
광주 광산구 왕동 산3-2

한말의 도학자<道學者> 후석 오준선(<後石 吳駿先> 1851∼1931년)이 나라가 병탄되자 용진산<聳珍山>에 네칸의 강당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던 곳이다. 이 곳은 원래 용진사(<湧珍寺>, 일명 상원사<上元寺>)가 있던 곳으로 삼봉 정도전<三峰 鄭道傳>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등이 다녀갔던 곳으로 전해진다. 절이 허물어진 뒤 청안이씨<靑安李氏>들이 그 터를 가지고 있었으나 후석이 정사를 짓는다는 말을 전해듣고 옛절터의 상대<上臺>와 중대<中臺>를 희사함으로써 정사를 지을 수 있었다. 후석이 별세한 뒤 문인들이 정사 동쪽에 세칸의 용진영당<湧珍影堂>을 세우고 석지 채용신<石芝 蔡龍臣>이 1924년에 그린 초상화를 모셨다. 영당의 좌우벽에는 큰아들인 북파 오헌수<北坡 吳憲洙>와 둘째 아들인 도호 오동수<道湖 吳東洙>의 영정이 함께 걸려 있다. 후석은 본관이 나주<羅州>이며 광산구 도덕동 도림마을에서 오하규<吳夏圭>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백부 항규<恒圭>에게 입양되었다. 8세때부터 이웃에 사는 오태규<吳泰圭>로부터 사서<四書>와 근사록<近思錄>을 배웠다. 이어 18세때부터 노사 기정진<蘆沙 奇正鎭>에게 배웠으며, 이를 계기로 송사 기우만<松沙 奇宇萬>, 식재 기재<植齋 奇宰>, 현와 고광선<弦窩 高光善>등과 사귀었고, 전재 임헌회<全齋 任憲晦>, 입재 송근수<立齋 宋近洙>등에게서 학문의 폭을 넓혔다. 그의 학문체계는 경학<經學>, 성리학<性理學>, 예학<禮學>, 의리론<義理論> 등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1934년에 간행된 문집 25권 12책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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