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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청문당 - 유시회가 처음 건립한 가옥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안산시 부곡동 261-15

이 집은 진주유씨 16세손 유시회< 柳時會 1562~1635 >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원래 충북 괴산에 살고 있었는데 유시회의 조카 적< 적 >이 선조의 아홉번째 부마로 정해진 후 아버지 시행< 時行 >이 세상을 뜨자 사위가 한양에서 괴산까지 3백리길을 왕복할 것을 걱정하여 1백리 안쪽에 묘터를 잡으라는 선조의 명에 따라 부곡동 새터에 묘를 정하였다. 이후 진주유씨는 넓은 사패지< 賜牌地 >와 안산 바닷가의 어염권을 기반으로 이곳에 세거하여 왔으며 이후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여 조선시대 중기에는 기호남인< 畿湖南人 > 3대가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남인 문사들이 이곳에 모여 교류 하였고 더 나아가 실학의 산실이 되었다. 특히 청문당의 만권루< 萬卷樓 >는 조선4대 서고의 하나로 기호남인들의 학문적인 기반이 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20세손인 해암 유경종< 柳慶種 1714~1784 >은 시문에 능하였고 의학에 조예가 깊어 유의< 儒醫 >로 칭송을 받았는데 매부인 표암 강세황< 姜世滉 1713~1791 >, 지기인 순암 안정복< 安鼎福 1712~1791 >과 함께 성호 이익< 李瀷 1681~1763 >의 문하로 이곳에서 10리 떨어진 성촌의 성호장< 星湖庄 >에 출입하였다. 특히 순암은 70여세에도 이 집에 한 짐의 서책과 손녀의 혼수에 쓸 가마와 말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해암 말년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오천시사< 午川詩社 >가 결성되었는데 경향 각지의 많은 문인과 묵객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중심인물은 표암과 순암 외에도 신광수, 채제공, 이용휴, 남태제, 남태응, 임희우, 임희성, 이맹휴, 허필, 허주, 박도맹, 조중보, 신택권 등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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