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문화ㆍ행사/문화재 (937)
국내여행 Travel
거대한 화강암의 서쪽면에 위치한 이 불상은 높이 4m의 선각(線刻)으로 된 여래좌상이다. 천상세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운문(雲紋) 위의 앙련연화좌(仰蓮蓮華座)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있고 머리는 소발(素髮)에 육계는 작은 편이다. 두 눈은 선각으로 가늘게 뜨고 있으며 코와 입은 두툼하게 나타내고 입가에는 약간의 미소를 띄고 있다. 또한 미간은 뚜렷하지 못하여 남쪽 불상과는 다른 인상을 주고 있다. 연화좌의 높이에 비해 양 무릎이 넓어 균형은 잡히지 않고 있으나 안정감을 보이고 있고, 특이하게도 반나형(半裸形)의 형식화된 선각이라도 연화좌의 정교한 수법과 도식화된 조각수법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남쪽면의 보살상은 높이가 4.5m이며 법의는 하부로 길게 흘러내려 양 무릎이 노출되지 않고 있다. 부채꼴의 보..
이곳 절벽에 새겨진 이 불상은 통일신라< 統一新羅 > 때의 뛰어나고 거대한 마애약사불상이다. 연꽃대좌< 蓮華臺座 > 위에 앉아 불꽃무늬에 휩싸인 이 불상은 민머리칼의 머리 위에 큼직한 육계< 肉계 >, 세련되고 단아한 이목구비, 탄력있고 우아한 얼굴과 어깨의 둥글고 탄력감나는 표현, 잘쑥한 허리와 무릎에서 밖으로 내려뜨린 오른손과 무릎 위에 얹어 약그릇을 들고 있는 왼손의 세련성등은 이상적인 사실양식< 寫實樣式 >을 나타낸 것이다. 우견편단< 右肩偏袒 >의 불의< 佛衣 >는 몸의 굴곡이 드러날 정도로 얇은 편인데 옷주름들은 유려< 流麗 >하고도 규칙적이며, 가슴에서 옷깃이 한 번 뒤집혀지는< 反轉 > 등 8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광배< 光背 >는 두신광< 頭身光 >과 불꽃무늬의 거신광< 擧身光..
부산 금정구 장전동 482 금정산< 金井山 >에 성을 처음 쌓은 것이 언제인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조선< 朝鮮 > 현종< 顯宗 > 8년(1667)에 왜구방어책< 倭寇防禦策 >을 논의할 때 금정산성의 보수를 거론한 것을 보면 그 이전부터 산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지금 남아 있는 산성의 기초는 임진왜란< 壬辰倭亂 >과 병자호란< 丙子胡亂 >을 겪고 난 후인 숙종< 肅宗 > 29년(1703)에 국방< 國防 >에 대한 새로운 인식 속에서 축성< 築城 >된 것이다. 그후 태평성대< 太平聖代 >가 계속되면서 금정산성은 돌보는 이 없어 폐허가 된 것을 순조< 純祖 > 8년(1808) 동래부사< 東萊府使 > 오한원< 吳翰源 >이 성문을 수축하고, 무너진 성곽을 다시 쌓아 산성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
경남 창원시 외동 창원공단 중심부에 위치한 "성산패총"은 공단부지 조성이 한창이던 1974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주관하여 긴급발굴 조사되었다. 초기 철기시대의 대규모 패총과 삼국시대의 성곽이 확인되었으며, 많은 양의 각종 토기류, 골각기류, 철기류, 석기류 등이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패총은 선인들이 먹고 버린 조개 껍질이 쌓여 층을 이루고 있는 조개무더기 유적을 말한다. 주로 바닷가와 호수 가에 형성되어 있으며 창원은 마산만의 바닷물이 지금의 창원시내 반송동까지 들어와 시내 곳곳에 패총이 이루어져 있다. 1975년 야철지 보호각을 건립하여 야철지를 발굴할 당시의 상태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이듬해는 유물전시관이 건립되어 성산패총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여 일반인..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외적을 막는 방어시설로 각 고을에 성을 쌓았었다. 동래에는 삼한시대 이후 거칠산국, 칠산국, 장산국, 독로국 등으로 불린 성읍국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때 이미 성을 쌓았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동래성에 관한 기록에 보이는 것은 『고려사』에 현종 12년(1021)에 동래군성을 수리한 것이 처음이고, 우왕 13년(1387) 박위< 朴 >가 왜구를 막기 위해 동래성을 크게 고쳐 쌓아 석성< 石城 >의 둘레가 3,090자, 높이 13자 이었다. 왜적방어< 倭賊防禦 >의 제1관문이었던 이 성은 조선 선조< 宣祖 > 25년(1592) 4월 14일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부산진성< 釜山鎭城 >과 함께 왜적들의 1차적인 공격목표가 되어, 부사 송상현을 위시한 군·관·민이 전사하는 장..
지리산 칠선계곡에 있는 암자이다. 암자 입구 화강암벽에 웅장한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이 있는 화강암굴 천장에는 부처님이 내려오시는 모습을 형상화한 수천 개의 조각들이 섬세하고 정교해 눈길을 끈다. 바위굴 속에 스님들이 심신을 수련하는 공간이 있다. [승용차] ●함양읍에서 지방도 1084호선 이용 ⇒ 마천, 추성 방면 ⇒ 마천면 의탄 ⇒ 추성마을 ⇒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 벽송사 ⇒ 서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46호인 이 건물은 조선 고종황제의 비 명성황후가 태어나 황후로 책봉되던 16세까지 살던 집으로 숙종 13년(1687년)에 건립되었다. 명성황후는 여흥부원군 민치록의 딸로 철종 2년 (1851년)에 나서 16세때 고종의 비로 책봉된 후 고종 32년 (1895년) 을미사변으로 일인(日人)에 의해 시해될 때까지 개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건립 당시에는 행랑채, 사랑채가 있었으나 없어졌고, 현재 남아 있는 안채는 1975년과 1976년에 중수한 것이다. 이곳에는 1904년 건립된 [명성황후탄강구리]비가 있는데 명성황후탄강구리란 글씨는 고종의 친필이라고 전한다. 또 이 비가 서 있는 자리는 바로 명성황후가 글공부하던 방의 자리라고 한다.명성황후숭모제 : 우리의 겨레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