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국내여행지 (1914)
국내여행 Travel
태화강은 울산의 동맥이다. 울산 가지산,고헌산에서 흘러 나온 남천을 본류로 하여 동쪽으로 흐른다. 화룡연을 돌아 학성을 지나 울산만에서 동해로 들어간다. 길이 41.5km. 동서로 약 36㎢, 남북으로 약 28㎢이다. 강 상류 유역 가지산 일대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태화강의 심장부에 위치했던 태화들은 장기간동안 무관심으로 방치되어 있다가 태화강 대공원 조성으로 다시 자연의 모습을 갖추고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 태화강 유래 신라 선덕여왕 5년에 자장율사가 당나라로 건너가서 수도할 때의 일이었다. 중국의 산동반도에 있는 태화지변을 지나갈 때 홀연히 한 신인이 나타나 묻기를 "너희 나라에 어떠한 곤란이 있느냐" 하기에 자장율사가 답하기를 "우리나라는 북으로 말갈에 연하고 남으로 왜국에 접하며 또 고..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갈대 7선으로 꼽히는 신성리 갈대밭은 우선 폭200M, 길이 1㎞이상되는 7만여평의 엄청난 규모가 보는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금강의 은빛 물결과 함께 어울어져 넘실대는 짙은 갈색의 갈대의 너울이 너무나 아름답다. 금강하구 강마을인 신성리는 '강갈대'가 무려 5만평에 걸쳐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갓 피어난 갈대꽃과 막 피려는 갈대꽃이 뒤섞인 아름다움과 갈대의 뼈와 뼈가 부딪치는 청아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갈대밭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을 잇는 금강하구둑 주변은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먹이가 풍부해서 겨울이면 수십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들어 일대 장관을 이룬다. 금강유원지는 하구둑이 있는 군산시 내흥동과 익산시 성산면 일대로 내수면 관광지..
우리나라에서 철 따라 다른 이름을 가진 산이 얼마나 될까? 금강산은 사계절마다 아름다움이 달라 봄 금강산, 여름 봉래산, 가을 풍악산, 겨울 개골산으로 불린다. 암마이봉(667m), 숫마이봉(673m)의 두 모습이 마치 말의 귀와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마이산(馬耳山)도 두 산봉우리의 이름이 철 따라 다르다. 봄에는 자욱한 안개속에 보이는 배의 쌍돛배와 같다고 하여 돛대봉, 수목이 울창한 여름에는 용의 뿔과 같다고 하여 용각봉이라고 불린다. 가을엔 마이봉, 겨울엔 눈으로 하얗게 뒤덮힌 주위 산과 대비된다고 하여 먹물을 묻힌 붓끝으로 꼭 찍어 놓은 것과 같다 하여 문필봉이라고 불린다. 암마이봉, 숫마이봉에는 승천하지 못한 산신부부에 얽힌 애절한 전설이 깃들어 있어 신비감 마저 자아내는데, 이 산 중턱에 있..
왕인박사 유적은 구림 삼거리에서 월출산 주지봉을 향해 올라가면 해발 350m 되는 곳에 왕인이 출생했다는 성기골과 그가 수학했다는 문산제가 있다. 왕인은 성기동에서 태어나 이곳 주지봉의 정기를 받아 학문이 일취월장하여 유가의 성현이 되었다. 또 이 계곡을 흐르는 물은 성천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 바위에 '성천'이라 각해진 명문이 있다.그가 도일했다는 상대포는 당시 중국과 일본을 잇는 국제항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간척지가 되어 농지로 변형되었으며 지금은 옛 자취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이 밖에도 왕인이 공부했다는 책굴과 왕인이 도일한 뒤 후대인들이 그를 기려 상대포를 향해 새겼다는 석인상이 있다. 1975년 왕인박사유적현창회에서는 이 유적지에 유허비를 건립하여 이곳이 왕인박사 탄생지임을 후대에 남겼다.선..
고려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조양임씨가 지금의 이회진에서 입촌하였고, 조선후기에 청주한씨 사경이 회진에서 이거하여 마을이 크게 번성하였다하며 회진면에서 가장 높은 공지산 아래에 위치하여 산저라 부르다가 2011년 산저를 선학동으로 개칭하여 불리어지고 있다. 최근 몇년동안 패밀리가 떴다, 일지매, 화첩기행 등의 TV방송촬영이 이뤄지고 각종 매스컴과 선학동 마을 인터넷카페를 통해 소개가 되어 많은 분들이 이곳 선학동마을을 찾아오고 있다. 그래서 선학동을 방문하여 체험로를 걸으면서 소설 선학동나그네를 읽을 수 있도록 100개의 표지판에 나누어 적어 세우게 되었다. 선학동 : 고 이청준 선생의 작품 "선학동 나그네"의 작품배경이 된 마을로 "포구에 물이 차오르면 관음봉은 한 마리 학으로 물..
보문호를 중심으로 조성된 보문단지는 국제 규모의 관광호텔, 토산품점, 쇼핑센터와 골프장, 테니스장 등 운동시설 등 각종 위락 시설이 갖춰져 있다. 보문호를 따라 뻗어 있는 산책로는 친구와 자분자분 걸어도 좋고, 유모차를 밀며 부부끼리 걸어도 좋고, 자전거를 타고 달려도 좋다. 특히 연인과 함께 오손도손 발 굴리며 오리호를 타는 기분이란.....경주는 어느 철에 와도 그 맛이 새롭지만 봄에 보는 보문호는 특히 아름답다. 벚꽃이 얼굴에 반사되어 눈부실 정도다. 바람이 불어 꽃송이가 눈처럼 쌓여 하얀 꽃밭을 이룬다. 밤에는 야간 경기가 있는 야구장에 온 기분이다. 사람들의 얼굴은 발그스름하게 홍조를 띤다. 보문호엔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 분수가 솟아오르는 시간은 08:00, 12:00, 14:30, 17:30..
안압지(雁鴨池)는 통일 신라시대 포석정과 더불어 연회장으로 쓰이던 곳으로 신라원지(新羅苑池)의 가장 대표적인 곳.안압지는 지난 1975년 본격적인 발굴작업 결과 원래 이름은 월지(月池)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안압지란 이름은 신라때 있었던 궁궐이 폐허가 되고 이곳이 마치 늪처럼 변하여 오리와 기러기만 노닌다고 하여 조선시대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안압지의 창건 연대에 대해서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으나 신라 문무왕 14년(674년)에 지은 것이라는 설이 우세하다.임해전지는 안압지가 만들어진 5년 뒤인 679년에 안압지 서편에 세운 동궁(東宮)의 자리를 말한다. 나라의 경사스런 일이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안압지를 바라보면서 이 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현재의 모습은 1975년 2년에 걸친 발굴 ..
석촌호수공원은 시간이 없어 교외에 나가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공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봄 햇살 가득한 석촌 호수에서 널따란 호숫가 산책길을 따라 물오른 버드나무와 새순이 돋는 개나리를 보면 절로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석촌호수 북쪽 잠실벌은 원래 나루터가 있었던 곳인데, 한강 상류에서 흘러온 흙이 쌓여 인공섬이 생겼습니다. 석촌호수는 동호와 서호로 나눠져 있는데, 동호는 새벽 운동의 조깅코스로, 주변 직장인들의 휴식처로, 또한 자전거족들의 산책로로 각광을 받고있으며, 서호는 롯데월드의 매직아일랜드와 서울놀이마당이 있어 놀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하여 좋습니다. 그리고 어두워질 무렵의 석촌호수는 매직아일랜드의 불빛으로 동화속의 나라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야경이 멋있습니다.
대포주상절리 동쪽해안은 대포주상절리 주차장에서 왼쪽 방향에 있는 올레길을 따라 100m 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다. 입장료 내고 가는 대포주상절리와는 다르게 무료로 편안하게 주상절리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찾는이 드물어 멋진 풍경을 뒤로하고 사진 촬영하기에 좋다. ▷ 제주도 : 이국정취 가득한 은혜의 땅, 환상의 섬
성주산자연휴양림은 차령산맥이 빚어낸 아름다움이 뛰어난 곳으로 성주면 성주리의 화장골 계곡은 4km에 이르는 울창한 숲이 장관인 계곡으로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화장골이란 이름은 성주산 일대에 모란형 명당이 8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곳 화장골에 감추어져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한다. 화장골 계곡 忠南 도내 11개소의 名水 中의 하나 충청남도에서는 97년 각 시 · 군으로부터 수질과 인근 자연환경이 뛰어난 계곡, 폭포, 하천 등 31개소의 후보지를 추천받아 대전 산업대 환경공학과 유병로 교수팀과 현지조사를 벌여 '99년 4월 25일 최종적으로 11개소를 확정 발표하였다. 이 중 화장골 계곡이 충남 명수 11개소 중의 하나로 선정된 것은 화장골 계곡이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청정지역임을 입증한다...
사람과 자연의 조화, 쾌적한 녹색도시 울산 남구 도심속에서 자연의 풍요를 만끽한다.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던 선암댐일원이 살아 숨쉬는 자연생태공원으로 도심속 자연의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 산책로, 지압도도, 탐방로, 장미터널, 넝쿨터널, 꽃단지, 생태습지원, 연꽃단지, 무궁화동산, 실개천, 폭포, 테마 물레방아http://seonamlp.ulsannamgu.go.kr ■ 선암저수지 이곳에는 일정때부터 선암제라는 못이 있었는데 울산이 공업단지로 지정됨에 따라 공업용수 담수를 위해 선암제를 확장하였다. 이후 낙동강계통 송수관로 유고시 울산공업단지와 온산공업단지에 비상용수 공급을 위해 댐을 1964년 12월에 준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도의 서쪽 서천진동과 상우목동 사이의 해변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산호사 모래밭이 있다. 서빈백사(西濱白沙)는 우도8경의 마지막인 8경이다. 서쪽 물가의 백사장, 즉 산호사 해변의 아름다움을 지칭하는 것이다. 산호사는 바다의 산호가 모래처럼 부서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산호사는 흰빛이지만 바다 빛깔을 머금어 푸른빛을 띠기 때문에 태양아래서는 눈이 부실 정도다. 산호사 모래밭은 규모가 조금씩 커지는 중이다. 서빈백사 - 우도8경의 마지막인 8경. 서쪽 물가의 백사장, 산호사 해변의 아름다움하고수동해수욕장 - 제주도 섬속의 섬 우도에 위치한 물맑은 해수욕장검멀레 - 우도에 있는 검은 빛깔의 모래밭우도 해상 군립공원 - 에머랄드빛 바다 이국적 정취 물씬우도 - 봄, 여름, 가을 낚시객과 여름 피서객들이 ..
우도에는 여러 해수욕장이 있다. 서빈백사, 검멀레와 더불어 물맑고 해수욕하기 좋은 곳으로 하고수동해수욕장이 있다. 서빈백사 - 우도8경의 마지막인 8경. 서쪽 물가의 백사장, 산호사 해변의 아름다움하고수동해수욕장 - 제주도 섬속의 섬 우도에 위치한 물맑은 해수욕장검멀레 - 우도에 있는 검은 빛깔의 모래밭우도 해상 군립공원 - 에머랄드빛 바다 이국적 정취 물씬우도 - 봄, 여름, 가을 낚시객과 여름 피서객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동안경굴 - 새끼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우도에 가면 만날 수 있는데...야항어범 - 우도의 제2경전포망도 - 우도의 제5경후해석벽 - 우도의 제6경제주도 : 이국정취 가득한 은혜의 땅, 환상의 섬
경상남도 통영시 동호동, 정량동, 태평동, 중앙동 일대의 언덕 위 마을로, ‘동피랑’이란 이름은 ‘동쪽 벼랑’이라는 뜻이다. 구불구불한 오르막 골목길을 따라 강구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피랑 마을에 오르면 담벼락마다 그려진 형형색색의 벽화가 눈길을 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統制營)의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로, 서민들의 오랜 삶의 터전이었다. 통영시는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여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2007년 10월 통영시청, 통영교육청, ‘통영RCE(현, 통영시지속가능발전교육재단)’, 푸른통영21추진협의회, 통영시 청소년 문화회 ‘드리머’, 지역주민50명, 정량동사무소, 정량동 자원봉사협의회 김가은 회장 외 20명, 학생 및 ..
서산지역 전통 양반가옥으로서 야산을 뒤로하고 U자형으로 토담을 두른 동측에 사랑채공간과 서측에 안채공간을 토담으로 구분하였다. 안채는 ㅡ 자형으로 부엌, 방, 대청마루, 건넛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뒷마당에는 석축위로 장독대를 설치하여 장독마다 박석을 깔아 놓은 것이 이채롭다. 안채 앞으로 원래 중문채가 있었다하나 후대(1980년대)에 헐어내고 현재의 목조주택을 건축하였다. 행랑채는 안채 좌측에 위치해 있고 중앙칸에 협문을 달아 외부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으며 굴뚝이 뒤로 흐르는 배수로 위를 지나도록 설치한 기법이 눈여겨 볼만하다. 사랑채는 ㄴ 자형으로 들문을 설치하여 필요시 사랑방에서 마루까지 한 공간으로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고, 사랑채 앞에는 ㄱ 자형 사랑채대문이 자리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마당을 중..
내장산의 구불구불한 계곡은 흡사 양(羊)의 내장(內臟)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산 이름도 그래서 내장(內藏)산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에 덩달아 여기 지명도 내장동이다. 원래는 영은사(靈隱寺)의 이름을 따서 영은산이라고 불리었다고도 한다. 정읍시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순창군과 경계를 이루는 해발 600∼700m에 기암괴석들이 능선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내장산은 '호남의 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 예로부터 조선 8경의 하나로 꼽혀왔다. 남원의 지리산을 비롯 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 부안 능가산(변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에 든다(동국여지승람). 내장산산국립공원은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지역내에 서식하고 있는 자생동물은 858종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포유류로 사향노루와 하늘다람쥐가 있고 ..
예천읍에서 북쪽에 있는 소백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사찰. 이 고장 출신 두운선사가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창건 하였다고 한다. 고려 태조 왕건에 얽힌 전설로 더 유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왕건이 삼한 통합의 큰 뜻을 품고 두운선사를 방문하고자 마을 입구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바위 위에서 쌍용이 나타나더니 절로 가는 길을 인도 했다고 하여 태조는 산 이름을 용문산, 절 이름을 용문사라 명명했다는 것이다. 고려 명종 1년(1171년)에 태자의 탯줄을 절의 왼쪽 봉우리에 묻고 창기사로 절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그 뒤 조선 성종 9년(1478년) 세종대왕의 왕비인 소헌왕후가 태실을 봉안하고 다시 절 이름을 성불산 용문사로 바꿨으며 정조때 소백산 용문사로 부르기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 절에는 맛배..
성산일출봉을 모두 볼 수 있는 광치기해변은 돌과 이끼, 화강암 굵은 모래가 많아서 해수욕 보다는 성산일출봉을 촬영하기에 좋은 해변이다. ▷ 제주도 : 이국정취 가득한 은혜의 땅, 환상의 섬
정방폭포 부근에 있는 자구리해안은 멋진 서귀포 해안과 함께 작가분들의 유명작품들을 볼 수 있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시원한 물놀이가딱이죠! 자구리해안 바로 옆에 자리한 담수욕장도 좋은 곳이다. 이중섭 화백은 섶섬과 문섬이 보이는 이곳 자구리 해안에서 부인과 5살, 3살짜리 두 아들과 함께 게를 잡으며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런 삶의 추억은 아직도 이중섭 화백의 그림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아름다운 가족의 사랑이 담겨 있는 "그리운 제주도 풍경"이다. ▷ 제주도 : 이국정취 가득한 은혜의 땅, 환상의 섬
제주의 산이라 하면 한라산만 있는 줄 알고 있지만 제주에도 한라산 처럼 높거나 웅장하지는 않아도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산이 적지 않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경치가 빼어나며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서린 곳으로, 반드시 찾아가봐야 하는 곳이 바로 산방산이다. 한라산 봉우리를 단숨에 뽑아 옮겨 놓았다는 설화속의 산방산은 수려한 용모가 단번에 찾는 이의 눈길을 빼앗을 정도로 아름답다. 산방산 안에는 고려때 세워진 절인 산방굴사가 있으며 여기서 내려다 보이는 형제섬, 가파도, 마라도, 용머리해안 등의 경관이 산방산의 운치를 더해준다. 특히 산방산에는 산방산암벽식물지대가 천연기념물 제376호로(1986. 2. 8) 지정 되어 있다 산방산은 조면암질안산암(粗面巖質安山巖)으로 이루어진 종상화산(鐘狀火山)으로 지름은..
부산에서 지척인 대변어항은 활처럼 휘어진 반도의 모서리에 해안단애가 주변을 감싸 안아 천혜 포구를 이루고 있다. 대변항은 연근해 어업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은 물론 해,수산물이 항상 풍부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특히 멸치회와 칼치회는 전국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일품으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멸치회를 한 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특히 양념이 중요한데 아마 기장 주변의 멸치회 전문 횟집 손맛과 새콤한 양념초장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따라올 수가 없을 것이다. 포구를 따라 주변을 걷다보면 멸치를 말리거나 다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멸치는 말려서도 먹고, 생으로 지져서도 먹고, 젓을 담아서도 먹고, 회로도 먹는다. 수협공판장 부근의 노천 횟집에서 5천원..
갯깍주상절리의 갯깍은 바다 끝머리라는 의미를 가진 제주 방언이다. 총 1.75km에 이르는 해안에 걸친 돌기둥이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국내 최대 규모이다. 주상절리 앞으로는 둥근 모양의 조약돌인 몽돌이 있는 해변이 펼쳐져 있다. 절벽의 일부는 다람쥐 굴이라 불리는 해식동굴이 있으며 토기 조각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갯깍의 매력은 바로 앞에서 주상절리를 보고 만져보면서 신비한 경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 - 이국정취 가득한 은혜의 땅, 환상의 섬, 신비의 섬
비슬산은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상북도 청도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의 바위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비슬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전한다. 비슬산자연휴양림은 대구의 남쪽에 위치한 해발1,084m의 비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435호인 비슬산 암괴류와 천년고찰인 유가사와 소재사, 용봉동석불입상, 대견사삼층석탑 등 수많은 불교문화유적이 산재하고 있으며 울창한 숲과 통나무집, 콘도, 청소년수련장, 야영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고루 갖추어진 현대와 자연이 어우러진 천혜의 휴식공간이다. 특히 4월하순부터 해발1,000m지점의 1,000,000m²(약30만평정도)의 광활한 평원에는 참꽃이 만발하여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대견봉에서 조화봉까지의 능선을 따라 피어나는 수많..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에 있는 사찰. 임진왜란때 법력으로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우리나라 호국불교의 근본도량.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되어 처음에는 죽림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후 신라 흥덕왕 4년(829년) 황면선사가 중건하였다고 하며 절 이름이 영정사로 바뀌었다. 절 이름이 바뀐 것과 관련하여 설화가 전해진다.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의와 명약을 찾던 중 이곳의 영정(靈井) 약수를 마시고 병이 나았다. 이에 왕이 크게 기뻐하여 이곳 절 이름을 재약산(載藥山) 영정사(靈井寺)라 하였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 때 일연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탈고하였다. 충렬왕은 이 곳을 찾아와서 천하 명산이요, 동방 제일의 사찰이라며 감탄하였다고 전해진다. 신라와 고려에 걸쳐 보우국사 일연..
남한산성은 백제시조인 온조왕이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했으나 말갈족의 침입이 있어 청량산을 중심으로 고지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요새지인 이곳으로 온조 14(BC5)년 천도하였으며 신라 영역이 된 후로 문무왕 12년(AD672)에 토성으로 축성하고 주장성 또는 일장성이라 하였다. 조선조에는 광해군 13년에 처음으로 남한산성을 경도보장지로 정하고 후금의 침입을 막고자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기 시작한 것을 '이괄의 난'을 치르고 후금의 위협이 증가하므로 인조 2년 수어사 이서에게 명하여 수축케 하였다. 축성에는 벽암대사도 도총섭에 임명되어 팔도승군을 동원하여 축성공역에 임하였으며 2년만인 인조 4년에 준공되었다. 그후 숙종때 외성을 축조하는 등 성의 시설물이나 성내의 영조물 조성은 조선말 순조때까지 계속되었다...
돌탑, 거대한 불두(佛頭), 와불(누워 있는 부처), 석가모니 고행상 등 연화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와우정사에는 이국적인 풍경이 가득하다. 이 절은 1975년 실향민 출신인 해월 법사가 실향민의 아픔을 민족화합과 통일의 의지로 승화시키기 위해 지었다.석굴 법당인 열반전에 안치된 높이 3m, 길이 12m의 거대한 와불은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향나무를 통째로 깍아 만들었다고 한다. 누워있는 부처중 세계 최대 규모.대각전에는 석가모니 고행상이 안치돼 있다. 석가모니의 6년간의 고행을 형상화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뿐이다. 사찰 입구에는 높이 10m의 불두가 있다. 황동 5만 근을 들여 10년에 결쳐 만들었다는 황동 5존불, 무게가 12톤에 이르는 통일의 종 등도 이채롭다. 정성들여 쌓은 돌탑군들도 이국적..
곽지해수욕장은 길이 350m, 너비 70m의 백사장과 평균수심 1.5m, 경사도 5~8도의 좋은 조건을 갖춘 해수욕장이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청소년 수련장이 설치되고 단체 피서객이 많이 찾는다. 곽지리는 선사시대 패총이 발견되었을 정도로 유서 깊은 마을이다. 지금의 곽지해수욕장은 옛날에 마을이 들어서 있던 곳이었으나, 어느날 갑자기 모래에 파묻혔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제주도 - 이국정취 가득한 은혜의 땅, 환상의 섬, 신비의 섬
외고산 옹기마을은 현재 전국에 산재해 있는 30여개의 전통옹기공방 가운데 8개가 모여 있는 전국 유일의 밀집촌으로 30여세대 150여 주민이 옹기제작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가볍고 튼튼한 플라스틱 제품이 범람하는 시대에 고유의 그릇인 옹기만들기에 매달려온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 있다. 국도변 외고산 마을은 이들로 인해 옹기골로 불린다. 옹기골의 역사는 1950년대 말 시작됐다. 당시 30대였던 허덕만씨가 이곳에 가마를 만들고 옹기를 구웠다고 한다. 인근 산에서 질 좋은 흙을 채취할 수 있는 등 입지조건이 좋았던 것이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옹기를 대체하는 그릇들이 쏟아져 나와 큰 타격을 받고 있으나 이 곳 가마의 불길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옹기골의 가마는 크게 전통가마인 노부리가마와 대량생산이 가..
금산사는 미륵신앙 곧 신라오교의 하나인 법상종(法相宗)의 근본도량으로서 이 지역 불교문화의 중심지였다. 신라오교(新羅五敎)란 열반종(涅槃宗, 무열왕때 보덕화상에 의해, 전주 경복사), 계율종(戒律宗, 선덕여왕때 자장율사에 의해, 양산 통도사), 법성종(法性宗, 문무왕때 원효대사에 의해, 경주 분황사), 화엄종(華嚴宗, 문무왕때 의상대사에 의해, 영주 부석사), 그리고 경덕왕때 진표율사에 의한 금산사의 법상종(法相宗)을 이른다. 한편 금산사는 후백제의 견훤이 그의 아들 신검에 의해 유폐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에는 법상종의 대종사이자 왕사인 혜덕 소현이 1079년(문종 33) 주지로 부임하여 퇴락한 절을 보수하고 새로운 법당을 증축하여 창건 이후 가장 큰 규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1598년(조선 선조..
양동마을은 조상들의 삶이 녹아있는 곳이다. 포항으로 이어지는 산업도로를 따라 안강들까지 달려가면 설창산 기슭에 자리잡은 양동마을을 만날 수 있다. 기와집과 초가집 등 150여채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간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마을에는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손소(孫昭)와 사위인 이언적(李彦迪)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이 곳의 고택중 상당수가 문화재급이다. 민가로는 드물게 보물로 지정된 고택도 3동이나 된다. 마을 뒤편 언덕엔 월성 손씨(月城 孫氏) 종택이 아래를 굽어보며 서있다. 종택에서 마을입구로 내려오면 이언적선생 생가인 무첨당(無添堂)이 보인다. 이언적 선생의 손자 이의잠(李宜潛)이 1616년에 건립한 수졸당(守拙堂)도 종갓집으로서의 면모..